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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호르몬에 자식 잃은 부모, 분노의 투쟁 17년

lalalife 2012. 11. 12. 12:06

성장호르몬에 자식 잃은 부모, 분노의 투쟁 17년

 

지난 2월6일 프랑스에서 성장호르몬 투약 후유증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 200여 명이 제기한 소송의 첫 공판이 열렸다. 소송한 지 17년 만에 열린 재판에서 의사 7명에게 징역형과 벌금형이 구형되었다.

파리=표광민 통신원

 

ⓒAP Photo
지난 2월6일 성장호르몬 투약으로 인해 사망한 아들 사진을 들고 법정을 찾은 아버지(오른쪽).
지난 2월6일, 의료 피해자 200여 명이 프랑스 파리의 경범죄 재판소에 모였다. 소송 피해자가 200여 명인 것은 이들이 주로 피해 사망자 111명의 부모이기 때문이다. 이날 법정에서는 희생자 부모가 서류상 잘못 기재된 사망일자나 사망 도시를 고쳐 말하기도 했다. 17년이나 지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법정에 선 피고는 대부분 은퇴한 7명의 의사였다. 의사 7명 가운데 3명은 80세가 넘었고 최연소자도 이미 59세였다.

이 사건의 사망자 111명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바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은 청소년이었다는 점이다. 이 소송은 프랑스 최대 의료 분야 사건으로, 이날은 소송 제기 17년 만에 열리는 첫 공판일이었다. 사망자 111명은 주로 왜소증이라는 이유로 인간 뇌하수체 추출 성장호르몬을 맞은 후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에 걸려 죽음에 이른 10~20대 젊은이었다. 그리고 고소를 당한 의사 7명은 1980년대 당시 성장호르몬 처방 및 보급 과정 책임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은 모두 결백을 주장한다. 85세로 가장 연장자이며 당시 성장호르몬 보급의 총책임자였던 소아과 의사 장-클로드 조브는 “진실과 정의를 기다린다”라고 했으며, 약사인 앙리 세르소는 그 자신도 “희생자들과 고통을 함께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게는 ‘비의도적 살인’과 부모에게 위험성을 알리지 않은 ‘중대한 사기 혐의’로 대부분 3~4년 징역형과 15만 유로의 벌금형이 구형되었다.

문제가 된 성장호르몬은 뼈의 성장과 근육의 증가 등을 촉진하는 호르몬으로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된다. 프랑스에서는 1980년대에 인간 추출 뇌하수체 호르몬이 왜소증 어린이에게 치료제로 처방되었다. 여기서 왜소증이란 정확하게 표현하면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을 일컫는다. 인구 100만명당 0.5~1명이 걸리는 희귀병이다. 이 병은 치매를 일으키거나 운동 능력을 감퇴시키고 환자는 발병 후 몇 년 이내에 사망한다고 알려져 있다.

성장호르몬과 이 희귀병의 관계가 의심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1984년 미국에서 한 청소년이 성장호르몬 투약 뒤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에 걸려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1985년에 미국·영국·캐나다·호주 등에서 뇌하수체 추출 성장호르몬의 처방은 금지되었다.

프랑스의 경우,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으로 인한 사망은 1979년 파리에서 처음 발생했으나, 이 병과 성장호르몬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처럼 빨리 인식하지 못했다. 프랑스에서는 1988년에 와서야 뇌하수체 추출 성장호르몬의 처방이 금지되었다. 그 사이, 프랑스에서는 이 성장호르몬이 어린이 1698명에게 투약되었다.

첫 공판이 17년 만에 열린 까닭

최초의 소송은 1991년 12월2일 한 피해 청소년의 부모에 의해 제기되었다. 이들의 자녀인 일리아실 벤지안은 당시 15세로 7년간 성장호르몬 치료 뒤 신경계통에 장애가 생겼다고 한다. 이 소년은 소송을 제기한 지 며칠 뒤 사망했다.

ⓒAP Photo
성장호르몬을 투약한 의사 7명을 응징하라고 주장하는 피해자 아버지.
전문 의학 분야인 만큼 다양하고 신중한 여러 조사가 실시되었고 무려 17년 만에야 경범죄 재판소에서 법정 공방이 시작된 것이다. 피해자들에게는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2월9일자 르몽드는 법정에 선 피해자의 사연을 자세히 소개했다. 은퇴한 생물학 교수 레잔 리우는 성장호르몬 치료로 아들을 잃었다. 그녀는 “당시에는 성장호르몬 열풍이 불었다. 투약을 받으려면 10 대 1의 경쟁이 있었기 때문에 투약 대상에 선정되기를 간절히 바랐다”라고 회상했다. 그녀의 아들은 성장호르몬 투여 이후 162cm까지 자랐으며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러나 23세에 죽었다. 리우 씨는 가끔 “만약 성장호르몬을 맞지 않았다면, 우리 아이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고 생각한다고 르몽드는 전했다.

물론 피고 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 무엇보다 프랑스에서 인간 추출 성장호르몬 처방이 금지되기 전까지는 피고들도 성장호르몬의 위험성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 브누와 샤베르는 “그들은 20년 전, 당시의 의학 지식에 따라 처방한 것이다”라고 법정에서 주장했다.

2월8일자 르 피가로는 사건의 중심인물인 장-클로드 조브에 관해 다루었다. 그는 프랑스 뇌하수체 협회장으로 당시 뇌하수체 추출 성장호르몬이 치료제로 쓰이는 과정 전반을 관리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기는 ‘펜대’에 불과했으며 자신의 선임자였던 피에르 루와예가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자기는 단지 서류에 사인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선임자인 루와예는 이미 사망해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르 피가로는 그가 당시 ‘소아학계 및 내분비학계의 태양왕’으로 묘사될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며 기사를 마쳤다.

이번 소송을 계기로 요즘 프랑스 사회는 무분별한 호르몬 남용과 백신 사용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난 2월8일, TV채널 프랑스 5의 <생방송>이라는 시사 토론 프로그램에서는 B형 간염 백신의 위험성을 다루었다. 1994년부터 프랑스 정부는 B형 간염을 에이즈에 비교하며 백신 접종을 권장했는데, 백신을 맞은 뒤 병을 얻은 피해자 29명이 지난 2월7일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의 원고 측 변호인인 매트르 르두는 소송을 제기한 한 여성이 백신을 맞은 뒤 다발성 경화증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이 여성은 백신센터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백신 관련 의료기관 종사자는 정부에 의해 의무적으로 백신을 접종해야 했다.

방송에 출연한 성장호르몬 피해자 협회 대표 잔 괴리안은 “당시 꼭 필요하지 않은 아이들까지 키가 크고 싶다는 욕망에 성장호르몬 처방을 받아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의료 체계 전반에 문제가 있었고 지금도 개개인의 신체 상태에 적합한 의료 처방이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그녀는 1994년 당시 24세이던 아들을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으로 잃었고 최근 이 사연을 담은 책 <그들이 내 아들을 두 번 죽였다>를 발간했다.

한국에서도 (프랑스의 성장호르몬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한때 성장촉진제 바람이 불었고 지금도 성장호르몬을 투여받는 사람이 많이 있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세월이 지나 한국에서도 성장호르몬 부작용 피해 소송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